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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라면

현존 최고(最古)의 신라 석탑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경주여행/경주명소)

by 이청득심 2017. 8. 11.

    경주하면 떠오르는 사찰은 단연 불국사와 석굴암입니다.  너무도 유명한 곳이죠...   하지만 경주에는 신라 시대의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사찰도 많습니다.  그 중 한 곳이 국보 30호인 분황사 모전석탑이 있는 ‘분황사’입니다. 


    선덕여왕 3년(634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분황사는 불국사의 말사로써 경주 황룡사지와 잇닿아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고승인 '원효대사'와 '자장율사'가 거쳐 간 사찰로 유명한 곳입니다.  


  하지만 제가 분황사를 찾은 이유는 역사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모전석탑 때문입니다.  딸아이와 함께 역사책에서 우연히 모전석탑을 보면서 우리나라 석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모전석탑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분황사에는 제법 큰 규모의 주차장이 있습니다.   ‘국보제30호 원효성지 분황사’ 라고 적혀있는 큰 표지석이 주차장 입구에 세워져 있어 찾기는 수월했습니다.  차를 주차한 후 주변을 둘러보니 단체 관광객을 태운 버스들이 제법 보였습니다.  경주 시티버스 투어 중인듯 했습니다.


▼ 주차장 입구에 세워져 있는  ‘분황사’ 대형 이정표

▼ 넓은 주차장의 모습


   분황사 입장을 위해서는 먼저 입장권을 구매해야 합니다.  어른기준 1,300원인데요,   매표소는 분황사 정문 옆에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 분황사의   정문!  매표소는 왼쪽에 있다는....ㅎㅎ

▼ 입장료 안내판~


    입장권을 구매한후 분황사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것이 연등행렬 뒤에 있는 모전석탑입니다.  연등을 매달아 놓은 모습도 좋았지만, 모전석탑에 대한 궁금증이 앞서 급히 석탑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분황사 정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모전석탑!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탑을 비교해 보면 재료에서 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연석을, 중국은  벽돌을, 일본은 나무를 이용해 탑을 만들죠.  그런데 분황사 모전석탑은 흔히 알고 있는 우리 민족의 석탑과 달리 중국의  석탑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안내판을 찬찬히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가 있었습니다. 



   국보 제30호인 모전석탑은 현존하고 있는 신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신라 선덕여왕 3년( 634년 )에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서 만든 석탑이라고 합니다.  즉 모전석탑(模塼石塔)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서 만든 석탑 양식인데요, 아마도 당시 중국의 벽돌 탑을 보고 재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모전석탑은 원래 9층으로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지금은 3층 까지만 남아있습니다.  1층 출입문에는 인왕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탑 주변 네 귀퉁이에는 사자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동해를 바라보는 쪽의 사자상은 암사자가, 내륙을 바라보는 쪽의 사자상은  수사자가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군요...ㅎㅎ



   모전석탑을 둘러보고 있는데, 문화해설사와 함께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몰려왔습니다. 경주 시티투어 관광객들인데요, 진지한 표정으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ㅎㅎ


▼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단체 관광객들!  앞에 있는 것이 ‘암사자’ 라는...ㅎㅎ


   모전석탑을 둘러 본후 분황사 경내를 둘러 봤습니다.  분황사(芬皇寺)의 뜻은 ‘향기가 나는 여왕의 절’이라는 뜻입니다.  재밌는 뜻이죠... 하지만 여기에는 분황사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 하나가 숨겨져 있습니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자 당나라 태종은  모란꽃 그림을 선물했습니다. 그때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을 본 선덕여왕은 모란꽃이 향기가 없는 꽃임을 눈치 채고, 당 태종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향기가 나는 황제의 절’이란 의미로 분황사를 세워 당나라 태종의 의중을 보기 좋게 꿰뚫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죠....ㅎㅎ


   분황사 모전석탑 옆에는 울창한 나무 사이로 돌들이 보기 좋게 놓여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쉼터인가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아니구요, 분황사 발굴 중에 나은 유물을 한쪽에 나둔 것이라고 합니다. 



  화쟁국사비부입니다.  이 비부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원효대사비의 받침돌입니다.  고려 숙종이 원효대사가 동방의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비석이나 시호가 없음을 애석하게 여겨, 숙종 6년(1101년)에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내려 비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문은 없어지고 비대석인 받침돌만 남았다고 하는군요....



  호국룡변어정(護國龍變魚井)이라고 불리는 신라시대 우물입니다. 우물의 8각 외부와 원형 내부는 불교의 팔정도와 원융의 진리를, 우물안 4각형의 격자는 불교의 근본교리인 사성체를 뜻한다고 합니다.  단순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오묘한 철학이 들어있는 우물입니다. 



  우물을 둘러본 후 뒤편에 있는 보광전(普光殿)으로 향했습니다. 보광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인데요, 많은 분들이 법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 보광전의 모습

▼ 보광전 앞에서 바라본 모전석탑

▼ 보광전 앞에서 설치되는 작은 돌탑과 부처님의 모습


   보광전을 둘러 본 후 돌아 나오는 길에 타종하는 곳에 들렀습니다.  이곳에서는 타종 체험을 할수 있는 곳인데요,  1인 1타 기준으로 1,000원의 체험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분황사에서 돈벌이로 하는 것은 아니구요, 수입 전액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사용한다고 합니다..ㅎㅎ



  분황사는 절의 규모에 비해 역사 문화적 가치와 이야기 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선덕여왕과 원효 대사등 당대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곳이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주하면 불국사와 석굴암’이라는 보편적인 생각에  ‘분황사’라는 아이템을 추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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