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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명소

[창원 산해진미 여행] 그때 그시절의 추억을 찾아 떠나는 창동예술촌 여행!

by 이청득심 2015. 11. 17.

   창동 예술촌이 위치한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오동동 일대는 한 때 '경남의 명동'이라 불리며 많은 인파로 넘쳐나던 곳으로서 많은 분들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특히 마산 사람들은 누구나 창동에서의 추억 한 두개 정도는 있을 법한 곳이죠.  하지만 1990년 중반을 지나며, 인구감소와 경기불황 등으로 상권이 쇠퇴하고 빈 점포들이 늘어나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되면서,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하지만 마산원도심 재생과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워있는 점포에 예술인들을 입주시켜 문화와 예술을 입힌 창동예술촌이 2012년 5월 25일 개장하면서 다시금 사람들로 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외국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보도 블럭으로 만들어진 '상상길'이 개장되면서 낮선 외국인들의 발걸음도 잦아지는 등, 창동예술촌은 새로운 추억의 명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 상상길 입구에 있는 알림판


 일반적으로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많은 추억을 만듭니다. 그리고 추억을 찾아서 여행에 나서기도 하죠그래서 여행을 한 마디로 정의해 본다면 아마도 '추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그래서 일까요요즘 창동 예술촌에도 창동의 추억을 찾아 오시는 분들의 발걸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창동예술촌에서의 찾을 수 있는 ' 그때 그시절의 추억'은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합니다^^


1. 조선시대의 창동은...  마산의 기반을 만들다!


   조선시대때 창동은 국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세곡을 보관하던 조창(漕倉 )이 있었던 곳입니다.  대동법 시행으로 국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조공미를 서울로 운반하기 위해 1760년, 비교적 큰 규모인 8채 53칸 규모의 조창인 마산창을 이 곳 창동에 설치하였습니다조창은 배가 다니기 쉬운 항구나 강가에 주로 설치했는데요,  조창의 설치를 통해  조선시대 때에는 지금의 어시장 일대가 모두가 바다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창이 설치되자, 공관과 민가가 순식간에 형성되었습니다. 이 일대  중성리, 동성리, 성호리등 6개 지역에 큰 마을이 형성되면서  오늘날 마산의 기반이 이뤄지게 되었는데요, 지금의 지명도 조창이 있었던 곳이라고 하여 '창동'이라고 한답니다.  그 당시 만들어진 마을들을 이어주는 골목길의 흔적을 지금도 찾을 볼 수 있는데요, 창동 복희집앞 골목이 250년된 그때의 골목길이랍니다.  


    그 당시 조창의 모습과 형태는 알 수 없으나 조창터는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남성동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구, 제일은행 ) 건물이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표지석 만이 남아있어 그 당시 조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일제시대때에는 조선식산은행 마산지점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 조창이 있었던 터.  남성동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구, 제일은행 ) 건물 자리


                 ▼ 조창터 임을 알리는 표지석                              일제때 '조선식산은행 마산지점'의 모습( 사진제공 : 김경년 님)

 



2. 근대사 속의 창동은.... 민족의 아픔을 함께하다!


  근대사 시기, 우리나라 전역이 그랬듯이 마산 지역도 일제의 억압과 수탈로 인해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요, 창동 지역에 있는 그 때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최초의 주식회사 '원동무역 주식회사' 건물터!   1919년 9월, 마산에서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무역회사였던 원동무역 주식회사의 옛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원동무역은 민족독립운동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던 원동상회의 옥기환 등 지역경제인들이  그 당시 자본금 50만원으로 설립한 회사입니다.


 원동무역의 옛 건물! 건물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 원동무역주식회사 건물터 임을 알리는 표지석!   건물앞에 주정차한 차들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ㅜㅜ



  담벼락만 남아 있는 '마산 형무소' 터!  마산형무소 터는 불종거리 삼성생명 옆에 위치한 지금의 부영주차장이 있는 곳입니다. 마산 형무소는 1909년 부산 감옥소 마산분감으로 사용되다 1970년경 지금의 회성동 자리로 옮길때까지 60여년간 사용했습니다. 일제때에는 독립 운동가들이, 3.1운동 때는 삼진 의거를 비롯해 인근 지역에서 만세를 불렀던 많은 사람들이 갇혔습니다. 해방후에는 좌우 이념갈등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갇혔던 곳으로서,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 여성 정치인 박순천도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마산형무소는  일제시대 때 부터 도시 외곽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고 합니다. 벌써 그 당시에도 창동 주변 일대는 마산의 시내 한복판 이었음을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현재 마산형무소 터에는 주차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만  주자창을 둘러싼 일부 담벼락에서는 예전 형무소의 모습을 느낄수 있는데요, 이곳을 방문하시면 주차장 주변 담벼락을 꼭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옛 마산형무소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

  




▼ 옛 마산형무소 터 입구! 왼쪽 큰 건물이 삼성생멸 빌딩이며, 천주교 마산 교구청이 바로 옆에 있답니다.


▼ 옛 형무소의 담벼락! 그때의 고통이 느껴지는듯 합니다....

 


▼ 담벼락의 낡은 창살 틈 사이로 보이는 차량들이 마친 형무소에 갖혀 있는듯 하네요....


  



  잊어서는 안될 인권 자주 평화 '다짐비'   올해 8월 27일 제막한 다짐비는 일제시대때 끌려간 위안부들을 추모하는 조형물입니다. 일제 강점기 마산은 일분본구 '위안부' 강제 동원을 위한 중심 전진기지이자 중간 집결지였습니다. 경남 각 지에서 끌려온 수많은 여성들이 이곳에 집결했다가 일본군의 전쟁터를 끌려 갔는데요, 이러한 근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성을 고려하여 이 곳에 설치한 것입니다.


  다짐비는 불종거리의 코아양과 바로 뒷편에 위치한 오동동 문화의 광장 입구에 있어 찾기가 아주 쉽습니다.  맞은편에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적 장소인 3.15운동 발원지가 위치해 있습니다.  때문에 일제의 침략 만행 규탄과 끌려간 위안부들을 추모하며, 우리나라 민주화 정신을 되새겨 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근현대사 탐방코스입니다.


▼ '다짐비'의 모습!  조형물 앞에 놓여진 흰 고무신에서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 오네요...



                         ▼ 소녀상의 다부진 표정!                              추모상 밑에 있는 물은 그녀들의 흘린 눈물이 아닐런지......

 



3. 50년 ~ 60년 대의  추억....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하다!


  해방이후, 1949년 6월 29일  마산 지역은 개항장으로 지정되고, 그해 8월 15일 마산시로 개편되었습니다.  조창의 개설과 항구의 개방으로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로 해양과 내륙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을 거듭하면서, 창동 지역은  마산의 중심지역으로 떠오르며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50년대 창동 거리의 모습


   창동을 대표하는 명소 '시민극장'   시민극장은 1908년 노동야학을 열고 시민 사회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민중의 뜻을 모았던 마산 최초의 '민의소' 였습니다. 한일합병후 일본인 소유의 공락관으로 바뀌었다가, 해방이후 시민극장이란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한편 시민극장은 6.25전쟁당시 보도연맹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의 슬픈 역사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시민극장은 1994년 폐관할때까지 수 많은 영화를 상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약속 장소가  되었던 장소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옛 건물만이 남아 있지만, 2014년 인기드라마였던 "응답하라 1994"에서 마산의 4대 부자로 언급될 만큼 유명했던 곳이며,  지금도 일부 사람들은  시민극장이 폐관되었던 1994년을 기점으로 창동이 쇠퇴해졌다고 말 할 만큼 시민극장은 창동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였습니다.


 옛날의 시민극장의 모습


▼ 다른 업종의 가계들이 들어서 있는 옛 시민극장의 현재 모습


   창동에서 가장 선호했던 만남의 장소, '학문당!'   많은 분들이 창동에서 약속을 하면, 시민극장과 더불어 약속 장소로 가장 선호하던 곳이 바로 '학문당' 입니다.  시민극장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해 있어 설명하기 쉽고, 기다리는 동안 책을 볼 수 있었던 학문당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인기를 끌던 약소 장소였습니다.


   1955년 개업하여 지금까지 60년간 서점을 운영해 오고 있는 학문당은 지금도 창동을 대표하던 명소일 뿐만 아니라, 마산 지역의 대표적인 서점입니다.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틈바구니 속에서 아직까지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서점을 지키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오랫동안 창동과 함께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학문당의 현재 모습!




▼ 옛 시절의 학문당의 모습.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흑백사진에서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 사진제공 : 김경년 님 )



   '패션의 거리 창동'을 입증하고 있는 '오성사!'  창동에 위치한 부림시장은 한때 서울, 부산 다음으로 유행한다고 할 정도로 유명했던 패션 시장이었습니다. 한복집을 비롯한 의류 가계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 었는데요,  지금도 부림시장에는 한복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한복집들이 많습니다.  창동이 한창 잘 나가는 패션 거리였을때는 문턱이 닳도록 문전 성시를 이뤄던 곳이 있으니 바로 오성사 입니다. 


   오성사는 80여 년의 시간을 한 자리에서 옷수선 영업을 해오고 있는 점포입니다.  한때는 서부 경남 일대에서 옷수선에 필요한 단추를 사야 한다면 반드시 이 곳에 들러야만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할 정도로 단추의 대명사로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 오성사의 모습! 창문에 있는 한자리 국번의 전화번호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네요...


▼ 오성사의 한 자리수 국번의 전화번호가 신기한 듯 쳐다보는 아저씨^^


   달콤함이 남다른 '고려당!'  창동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 중 한 곳이 고려당입니다.  고려당 빵집은 모든 마산 분들의 추억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분들의 사랑과 추억이 담긴 곳입니다.  1959년에 개업한 이후 지금까지 창동에서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들과 당당히 경쟁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려당은 도너스와 꿀빵등 팥이 들어가는 빵과  팥빙수, 팥죽등이 특히 맛있는 곳입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세운 3.15의거의 발원지! 3.15의거는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당시 이승만 자유당 독재정권이 장기 집권을 위한 온갖 불법 부정선거을 획책하자, 이에 분개한 시민과 학생들이 항거해서 싸웠으며, 3.15 의거는 4.19 혁명의 도화선으로 이어져  마침내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던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 민주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번화가인 창동과 오동동 일대의 불종거리에서 3.15의거 시위가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민주당 마산당부가 있었던 건물앞에는 '3.15의거 발원지'라는 표지석이 있어  3.15의거의 정신을 되새기고 있는데요, 바로 옆에는 일제시대때 끌려간 위안부들을 추모하는 조형물인 '다짐비'가 있어 함께 들러보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오동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3.15의거 발원지 표지판


▼ 오동동 문화의 거리의 모습




4. 70년 ~ 90년 대의 화려했던 그날의 추억....  창동의 전성기!


  1967년 한일합섬이 들어서고, 1972년부터 마산수출자유지역이 가동되면서 창동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이 시기의 창동은 지나 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서로 부딪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창동으로 쏟아져 나왔었는데요, 그때의 흔적을 찾아 보겠습니다.


▼ 1990년대 창동의 거리 모습!


  경남의 금융을 이끈 '경남은행'  본점과 임시 영업장!  1970년 5월 22일, 경남은행이 마산에서 개업을 했습니다.  현재의 경남은행 본점은 마산회원구 석전동에 있지만, 그 당시 경남은행 본점은 지금의 경남은행 창동지점입니다.  70년대의 창동 지역은 경남은행 본점이 위치했을 만큼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로 번성하였던 곳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 현재 경남은행 창동지점의 모습


▼ 예전 경남은행 본점 이전 모습 ( 사진출처 : 경남은행 홈페이지 )


   재밌는 사실은 경남은행의 개업식은 본점에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임시 영업점에서 개업을 했는데요, 아마도 불종거리의 코아양과 건너편에 위치한 지금의 경남은행 오동동 지점에서 임시 영업을 시작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알수가 없지만요^^


▼ 개업 당시의 경남은행 초청장!


  ▼ 경남은행 개업당시 모습( 사진출처 : 경남은행 홈페이지 )         개업당시 임시 영업장으로 추정되는 경남은행 오동동 지점

 


   세련된 맛을 담은 '코아양과!'  코아양과는 창동에서 고려당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유명한 빵집입니다. 2014년의 인기드라마였던 "응답하라 1994"에서 '무학소주, 몽고간장, 시민극장'과 함께 마산의 4대 부자집으로 언급되었던 '코아양과'가 바로 이 집입니다.  올해로 35년째 자리잡고 있는 코아양과는 초창기부터 만들어온 옥수수빵이 주력인데요, 세련된 실내디자인으로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인기가 높았던 곳입니다.



   금남의 집 '복희집!'   고려당 옆 에 있는 골목 아래쪽에 위치한 복희집은 40년이 넘는 전통과 추억이 간직된 곳입니다.  1971년에 개업한 복희집은 이 지역 학생들에게는 아지트와 같은 곳입니다. 특히 여학생들이 너무 많이 애용하다보니 한 때 '금남의 집'으로 불린적도 있었는데요,  분식집 답게 주전부리나 냄비우동, 팥빙수등이 유명하답니다.




  추억의 레코드 가게 '명곡사!'  앞서 보여드린 1990년 창동의 거리 모습에서도 명곡사 간판이 보입니다. 언제적 전화번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명곡사의 간판에는 두자리 국번의 전화번화 새겨져 있습니다. 정확한 개업시기는 알수 없지만 그 만큼 오래되었다는 방증일텐데요. 명곡사는 이젠 찾아보기 힘든 레코드판을 아직까지도 팔고 있는 추억의 레코드 가게랍니다^^


  '비자비' 커피숍에서 즐기는 '응답하라 1988'  요즘 새롭게 시작되는  '응답하라 1988' 이란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 딱 어울릴 법한 커피숍이 바로 '비자비' 입니다. 1987년에 개업하여 지금까지 한자리에서 영업을 해오고 있는 비자비는 많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였습니다.  유명한 프랜차이즈를 비롯한 커피 전문점들이 난립하고 있는 요즘 같은 시기에 30여년을 한자리에 운영해 오고 있는 비자비의 커피 맛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간판에서도 관록이 묻어나오는 '만미정!'  식당 이름치고는 다소 어색하게 다가오는 만미정은 불종거리 맞은편에 있는 '창동예술촌' 큰 간판이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간판에 있는 두자리 국번의 전화번호가 보여주듯, 꽤 오랜 시간을 한 자리에서 영업을 해오고 있는데요, 만미정은 여름철 모밀국수와 겨울철 돌우동이 일품인 곳이랍니다.



 

5. 응답하라! 2015...  '창동의 추억' 부활


   창동의 쇠퇴 시기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창동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의 시민극장의 폐관이 아닐까 합니다. 창원 공단의 급격한 발전으로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줄어들고 있는 시기에 시민극장까지 없어짐으로써, 젊은 이들의 발걸음마저 끊긴 시기가 그 즈음일테니까요...


   지금의 창동은 지난 날의 전성기를 기억하며  새로운 부활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사업이 2012년 5월 25일 개장한 창동 예술촌입니다. 지난 날 창동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새로운 창동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만들수 있는 창동 예술촌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요, 올해는 새로운 추억거리가 마련되어 창동을 찾는 발걸음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상상 이상의 즐거움이 있는 곳! '창동 상상길'  상상길은 불종거리에서 부림시장으로 가는 창동예술촌내 155m의 거리에 미리 신청한 외국인 23,000명의 이름을 보도블록에 새겨놓은 길입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창원시와 함께 "Imagine your Korea"라는 인지도 제고를 위하여 유명인이 아닌 일반 외국인 응모자들의 신청을 받아 만든 길인데요, 이 곳에 이름을 남기려고 30여만명이나 되는 외국인이 신청했었다고 합니다. 


    가보지 않은 외국의 어느 낮선 도시에 나의 흔적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그 낮선 도시에 대한 호기심으로  때문에 꼭 가보고 싶어질 것 같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상상길은 새로운 관광자원이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상상길이 조성된 후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늘어나고 있다니 하고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 상상길임을 알리는 현판과 외국인의 이름이 써여진 이름 보도블록의 모습^^



▼ 허걱??  인기 여자 아이돌 포미닛( 남지현, 권소현, 김현아, 전지윤, 허가윤 ) 의 현판도 있네요^^


  인가가수  f(x) 크리스탈의 현판도 있네요^^


▼ 상상길을 걷고 있는 인파들


▼ 상상길에 왔다가 창동예술촌을 둘러보고 있는 외국인들의 행복한 모습^^ ( 사진제공 : 김경년 님 )


  가장 마산스럽고 창동스러운 '315 꽃화분 골목'  학문당 맞은편에 위치한 문신예술골목에는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315개의 꽃 화분입니다. 315개의 꽃 화분은 아주 우연히 시작되었습니다. 창동에 사시는 김경년씨께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3.15의거 55주년을 맞아 315개의 꽃화분을 조성해보자는 제안을 올렸는데, 제안에 동참하기 위해 순식간에 315명의 시민들이 꽃화분 제작비 각 1만원을 부담하고 나서면서 315개의 꽃 화분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꽃화분에는 참여한 이들의 이름표가 부착되어 있는데요, 꽃 화분에 붙여진 이름표에서 아는 이들의 이름을 찾아보는 것도 꽤 재미있습니다.  315개의 꽃 화분은 문신예술 골목을 화사하게 장식하면서 창동예술촌의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잡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 골목을 '문신예술 꽃골목' 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 315 꽃화분 골목 입구!  멀리 맞은편에  오성사의 모습이 보이네요^^


▼ 담벼락 한켠을 장식하고 있는 꽃 화분들^^ 아는 사람의 이름이 어디 있을까요?^^


▼ 아름다운  이 화분은 누구의 것일까요?


▼ 외지에서 창동예술촌으로 견학 온 분들을 안내하고 있는 김경년씨


  창동예술촌은 조선시대와 근현대사의 흔적을 품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새롭고 즐거운 볼거리들을 조화롭게 채워가며  여행객들의 관심도 높여가고 있는 곳이죠. 여행을 통해 누군가는 추억을 만들고, 또 누군가는 추억을 더듬습니다. 그리고 추억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통해 만들어는 지는 것일텐데요,  이제 마음 한켠에 아스라히 간직해 둔 추억을 떠올리며, 새로운 추억을 담기 위하여 창동예술촌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창동 예술촌 관련 포스팅 >


[마산 산해진미 맛집]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창동예술촌의 맛집 열전!


[창원명소]낮에도 예쁘고, 밤에는 더 아름다운 창동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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