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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라면

전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행궁인 화성행궁!! (수원여행/수원화성여행)

by 이청득심 2016. 6. 27.

   수원 화성 여행에서 빼놓을수 없는 곳이 화성행궁(華城行宮)니다. 전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행궁으로 유명한  화성행궁은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대장금', '이산', '해를 품은 달', '왕의 남자'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류의 영향으로 외국인도 많이 찾는 명소인데요, 수원 화성과 함께 반드시 들러봐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들렀습니다.

 

    행궁이란 왕이 궁궐을 떠너 멀리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무르는 곳입니다. 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정현세자( 사도세자 )를 참배하기 위해  현륭원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인데요, 그 어느 행궁보다 웅장하고 활용도가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입니다.  정조대왕 13년인 1789년에 건립된 화성행궁은 수원부 관아로 사용되다가 1794년~ 1796년( 정조 18년 ~20년 )에 걸쳐 진행된  수원화성 축성 기간 중에 증축하여 최종 완성된 곳으로써,  평상시에는 유수부(지금의 시청) 관청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화성행궁의 정문은 신풍루(新豊樓) 입니다. 처음에는 '신풍루'가 아닌 '진남루'였지만, 정조 대왕의 명으로 신풍루라고 변경하였는데요, 신풍이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이라고 하는군요^^ 그 당시 1795년 정조대왕은 신풍루 앞에서 친히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는데요, 신풍루는 정조대왕의 수원 사랑과 백성을 위하는 위민 정신을 잘 보여주는 곳임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 신풍루(新豊樓) 의 모습




  신풍루에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나옵니다. 왼쪽에는 서리청과 비장청, 오른쪽에는 관광안내소와 집사청이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원을 들어준다는 큰 노거수가 있는데요, 600년 이상된 느티나무입니다. 화성 성역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주었다는 신령스런 나무인데요,  높이 30 m,  둘레 6 m에 이르는 노거수는 경기도 보호수 5-3 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 신풍루에 들어서면 볼수 있는 큰 마당


▼ 수령 600년 이상된 신령스런 느티나무 노거수! 


▼ 소원을 적은 소원지!  저 속엔 무슨 소원이 들었을까요?


  느티나무를 들러보고 좌익문(左翊門) 쪽으로 향했습니다.  중양문 앞에 위치한 좌익문은 행궁의 본전인 봉수당에 이르는 두번째 문으로써 문의 이름 '좌익(左翊)'은 '곧 곁에서 돕는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 좌익문의 모습!


  다음은 중양문(中陽門) 입니다.  중양문은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바로 앞에 위치하는 으로써, 봉수당을 굳게 지키는 내삼문(內三門) 입니다. 중양문에는 조선시대 복장의 순라군들이 배치되어  있어 탐방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답니다^^   


▼ 중양문의 모습! 조선시대 복장을 한 순라군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죠^^


▼ 조선시대 복장의 순라군과 한복입은 아가씨를 모습에서 마치 조선시대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다음은 행궁의 정전(正殿)인 봉수당(奉壽堂) 입니다. 중양문을 지나 봉수당으로 들어가는 길은 세부분으로 나눠져 있어 '삼도'라고 하는데요, 넓고 약간 높은 가운데 길은 왕이 다니는 '어도(御道)'입니다. 신하들은 양 옆의 길로 다녀야 하는데 오른쪽은 문관, 왼쪽은 무관이 통행하였는데요, 어도는 국왕외에는 함부로 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화성유수부의 동헌 건물인 봉수당은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 하는데요, 중심 4칸을 왕권으로 상징하는 편전공간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정조대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을 열었을때, ' 만년(萬年)의 수(壽)를 빈다'는 의미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현판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이 건물을 '봉수당'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 봉수당의 모습!  가운데 길이 국왕 만이 걸을수 있었다는 '어도'입니다. 


▼ 봉수당의 편전공간^^


▼ 정조대왕의 처소! 


▼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에서 예를 드리는 정조대왕의 모습^^


▼ 봉수당에서 진지하게 관람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모습


  봉수당을 관람하고 장락당으로 가기위해 경룡관(景龍館)을 통과했습니다. 경룡관은 장락당의 바깥문으로 사용했던 부속건물인데요, 2층 구조로 만들어서,  2층은 누마루로 만들고 1층은 문을 만들어 지락문(至樂門)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 경룡관의 모습


  장락당(長樂堂)1795년에 정조 행차시 혜경궁 홍씨의 침전과 회갑연 장소로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훗날 정조대왕이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어머니를 모시고 수원에 살때를 대비하여 지었다고 합니다. 장락당은 봉수당 건물과 서로 통하게 만들었는데, 당시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구조로써 정조의 처소인 봉수당에서 장락당으로 쉽게 오고가기 위함이라고 하는군요^^

 

▼ 장락당의 모습^^  오른쪽으로 봉수당과 연결되어 있답니다^^


  장락당(長樂堂)의 왼편으로 돌아가면 모형 음식들이 진열된 곳을 볼수 있습니다. 이는 혜경궁 홍씨 진찬연에 사용했던 진찬 모형 입니다. 당시 진찬연에서 혜경궁 홍씨에게 바쳤졌던  12기의 소별미와 70가지의 음식, 그리고 42개의 상화를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답니다.

 

▼ 진찬 모형^^


  봉수당과 장락당 뒤편으로 나가면 긴 집채가 나오는데요, '행각(行閣)입니다. 행궁의 제일 끝 부분에 위치한 행각은 주로 상궁과 나인들이 거처하는 곳인데요, 그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을 보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 행각(行閣)의 모습


▼ 행각(行閣) 한 곳에 연출해 놓은 '단장하는 상궁'의 모습^^



  행각을 거쳐 행궁 밖으로 나오니 득중정(得中亭)이 보였습니다.  정조 대왕이 활을 쏘던 득중정은 정조가 새로 만들어진 이 정자에서 활을 4발 쏴 모두 맞춘 기념으로 득중정으로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 득중정의 모습


  득중정 바로 옆에는 낙남헌(洛南軒)이 있습니다. 낙남헌은 혜경궁 홍씨 회갑연 기간중에 과거시험과 양로연등의 각종 행사가 열렸던 곳입니다. 


▼ 낙남헌의 모습! 많은 탐방객이 와있네요^^


  득중정과 낙남헌을 둘런본 후 땀도 식힐겸하여 뒷쪽 후원 숲속에 있는 미로한정(未老閒亭)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장래 늙어서 한가하게 쉴 정자'라는 뜻을 지닌 미로한정은 세자에게 양위하고 화성으로 가리라던 정조대왕의 뜻이 담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미로한정에 앉아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데요, 미로한정에서는  화성행궁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답니다^^


▼ 미로한정의 모습!


▼ 미로한정에 내려다 본 화성행궁의 전경!  중간에 보이는 건물이 '신풍루'랍니다^^



 미로한정에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발걸음을 화령전(華寧殿)으로 옮겼습니다. 화령전은 정조 대왕께서 돌아가신 후, 정조 대왕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봉안하기위해 만든 어진봉안각입니다. 화령전의 정조대왕 어진은 다른 왕들의 왕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융복(군복)을 입은 모습의 어진이라고 합니다. 


  화성에서 '화'자를 따고, 시경의 '돌아가서 부모에게 문안하리라'라는 뜻의 '귀령부모'에서 '령'자를 따 이름붙인 '화령전'은 국왕 순조가 선왕인 정조 대왕을 찾아 문안을 여쭙는 전각인 것입니다. 주요건물로는 어진을 봉안하고 있는 정전, 만약의 사태시 어진을 옮겨 모시는 이안청, 제사를 모시기 위해 대기하는 재실등이 있습니다. 


▼ 화령전의 입구


 화령전에 들어서면 먼저 '제정(祭井)'이 눈길을 잡습니다. 제정은 화령전의 제례에 사용되는 정화수를 뜨는 우물로 '어정(御井)'이라고도 합니다. 화령전 제정은 정방향 형태로 각 방행에 15개의 장대석을 치밀하게 쌓아 올려 만들었다고 합니다.


▼ 제정의 모습



  다음은 운한각(雲漢閣) 입니다.  화령전의 정전인 운한은 정조 대왕의 어진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1801년에 만들어진 운한각은 조선후기의 가장 대표적인 건물인데요, 운한각 옆에는 만약의 사태시 어진을 옮겨 모시는 이안청이 함께 있답니다. 제가 간날은 운한각을 개방하지 않아 어진을 볼수가 없었는데요, 다른 왕들과는 달리 융복(군복)을 입은 어진을 볼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 운한각의 모습!



  운한각까지 둘러본 후 행궁광장으로 발걸음을 급히 옮겼습니다.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앞에는 쉽게 볼수없는 다양한 상설 공연들이 펼쳐지는데요, 그중에서도 정조대왕 시대에 완간된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24가지 기예인 '무예 24기' 공연이 시작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 무예 24기 공연 준비 모습^^


 '무예 24기'는 검과 도, 창과 봉, 화살, 마상무예와 맨손체술등 다양한 무기와 동작으로, 변화 무쌍하며 크고 간결하여 호쾌하고 장중한 멋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풍루에서는 마상무예를 제외한 시범공연이 펼쳐지고, 전체공연은 연무대 일원에서 개최하는데요, 신풍루에서 펼쳐지는 시범공연도 정말 멋지답니다. 





 

 



  화성행궁 관람을 마치고 전날 화성열차타고 지나가면서 눈여겨 봐두었던 정조대왕 동상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정조대왕 동상은 화성행궁 윗쪽에 있는 '화성열차 팔달산 매표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화령전에 있다는 융복(군복)을 입은 어진을 닮은 정조대왕의 모습을 기대하고 갔지만 정조대왕의 동상은 여타의 동상들과 큰 차별점이 찾을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 정조대왕의 동상의 모습!



  화성행궁은 당초 건립당시 600여 칸 규모의 정궁(正宮) 형태로 지어져, 행궁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행궁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때 일제의 민족문화 역사 말살정책으로 인해, 행궁의 낙남헌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수원시민들의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운동으로 2003년 1단계 공사를 마무리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는데요, 지금은 우화관, 장충관등 4개동 94칸을 복원하는 2단계복원 사업을 추진중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수원 시민들의 행궁 복원 사업 과정을 살펴보니 '조선의 부흥'을 이끌었던 정조 대왕의 업적이 묘하게 오버랩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역사속에서 '대왕(大王)'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왕은 두 분이 있습니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조선의 '세종대왕'이 그 분들입니다. 하지만 수원에서는 정조를 일컬어 '정조 대왕'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조선후기 '조선의 부흥기'를 이끌며,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라 할수있는 화성을 축조했던 정조 대왕의 수원 사랑과 애민 사상에 대한 존경심 때문일텐데요,  정조 대왕의 지극한 효심과 통치 철학을 느낄수 있는 아름다운 수원 행궁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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