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 되면 뜨거운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이 있죠! 배롱나무 꽃 인데요,  일명  '나무 백일홍'이라고도 하죠.  지난해 전남 담양 명옥헌에서 만났던 배롱나무 꽃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해, 올해는 제가 사는 지역 가까운 곳에서 멋진 배롱나무가 어디 있을까 하고 찾다가 우연히 경남 함안에 있는 고려동 유적지에 멋진 배롱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배롱나무를 만나 보기 위해 ‘고려동유적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고려동 유적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왜 고려동이지? 고려, 조선할 때 그 고려?"  바로 이름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을 먼저 살펴봤습니다. 


▼ 고려동 유적지 안내판의 내용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 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는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 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다. 


  그는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신주를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그의 유언을 받은 후손들은 6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이 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고려동 유적지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으로 고려의 충절을 지킨 이오 선생의 고려인 마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건물들은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이후 복원되었는데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1982. 8. 2)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내판을 읽어본 후 마을로 들어서려니 먼저 ‘고려교(高麗橋)’라고 써진 작은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어 다리가 있는지 표시가 잘 나지 않지만, 작은 천(川)을 건너는 다리가 있습니다. 



   고려교 앞에서 마을을 쳐다보면 엄청나게 큰 배롱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여느 시골 마을에 가면 볼수있는 당산나무처럼  마을의 수호신인냥  엄청난 기운을 뽐내는 오래된 배롱나무입니다.  그래서 이 배롱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참을 머물러 봅니다^^








   배롱나무 아래에서 한옥을 바라봤습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게양되어 있는 태극기가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언제부터 게양하고 있는지 알수없지만,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켜낸 마을이라는 생각 때문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특히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고려 충신의 피끓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배롱나무를 즐기다가 종택(宗澤)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종택은 고려말 선비 이오 선생이 지은  집인데요,  대문 입구에 있는  ‘함안나들이 스탬프 투어’ 박스가 눈에 띄였습니다. 한걸음 들어서니 방명록도 보였는데요. 이곳을 다녀간 여러 사람들의 글귀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종택에는 주거공간인 계모당, 안채, 복정등 여러 채의 건물과 휴식 공간인 자미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종택 오른쪽에 있는 자미정(紫薇亭)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자미정으로 통하는 물체문(勿替門)의 모습

▼ 휴식공간인 자미정(紫薇亭)의 모습


   다음은 종택의 주거 공간 중 하나인 계모당입니다. 계모당은 종택의 소슬대문에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건물입니다.  사랑채  같은 곳이죠.


▼ 계모당의 모습!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곳간채~


  다음은 계모당 뒤편에 있는 안채와 아래채입니다. 주로 여성분들의 거주하는 거주공간입니다.  

 

▼ 오른쪽이 안채, 마주보이는 건물은 아래채~


  다음은 ‘복정(鰒井)’입니다. 안채 옆에 있는 우물인데요, 종택에서 가장 재밌는 곳인 듯 했습니다.  왜냐구요?? 이 우물에서 전복이 나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복정의 ‘복’은 전복을 뜻하는 글인데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우물인 듯합니다. 


▼ 복정의 유래!  전복이 나왔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는...ㅎㅎ

▼ 복정의 모습



  사당과 율간정등 일부 건물들은 문이 잠겨있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어 다소 아쉬웠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종택을 나와 고려동 담장을 따라 마을을 거닐었습니다. 기와담장과 중간 중간 보이는 한옥들이 운치를 더해줍니다.


▼ 수덕문의 모습!  대문 안에는 ‘염수정’있다는데....  문이 잠겨 볼수는 없었습니다ㅜㅜ

▼ 기와담장 넘어 종택의 모습이 보이네요~

▼ 고려동 마을의 기와담장....

▼ 청간문의 모습! 대문 안에는 모계정사가 있지만 역시나 문이 잠겼다는...ㅜㅜ



  담장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마을 입구까지 왔습니다.  이곳에는 ‘효산정’이 있지만 역시나 문이 잠겨 있어 내부는 볼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무궁화와 붉은 배롱나무 꽃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습니다..


 ▼ ‘효의문’의 모습!  대문 안에 효산정이 있다는....

▼무궁화와 배롱나무 꽃!

▼ 기와담장 위에 붉게 핀 배롱나무 꽃!


   마을을 천천히 둘러 본 후 왠지 아쉬운 마음에 조금 떨어진 ‘경모비’를 보러 갔습니다. 경모비는 모은 이오 선생을 추모하는 비입니다. 선생의 후손이 건립한 것인데요, 경모비를 보면서 다시 한번 그의 충절을 떠올려 봤습니다. 


▼ ‘상의문’의 모습!

▼ 경모비의 모습!  高麗進士 茅隱李先生景慕碑(고려진사 모은이선생경모비)


   경모비를 둘러 본 후 고려동 유적지 입구로 돌아 나오면서 문득 여말선초의 역사적 사건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두문불출’의 유래를 가진 유명한 ‘두문동 고려 72현’ 사건입니다. 고려가 멸망하자 불사이군을 외치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두문동으로 들어간 고려 충신 72명을 조선왕조가 불살라 죽인 사건입니다.  


   비록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던  ‘고려 충신 72현’과 비교 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고려동 유적지의 시조인 모은 이오 선생이 보여준 충절 또한 높이 평가받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뜨거운 여름날, 고려동 유적지에서 만난 배롱나무의 붉은 아름다움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실천한 고려 충신에 대한 숭배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ㅎㅎ


< 본 내용은 경상남도 공식블로그 경남이야기에 송고한 내용을 일부 수정.편집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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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 | 고려동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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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청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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