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은 짙어졌지만, 첫 전령사였던 통도사 홍매화는 내년을 기약합니다. 올해도 통도사 홍매화를 영접하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대신 다른 봄꽃들의 안부가 궁금해져, 지인들과 함께 양산 통도사로 번개 출사를 다녀왔습니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인 '불보사찰' 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사계절 내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 혼잡을 피해 서둘러 도착해 제2주차장을 이용했습니다. 이른 아침임에도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량들을 보니 통도사의 인기가 실감납니다. ㅎ


제2주차장을 나서면 곧장 양산천을 가로지르는 '일승교'가 반겨줍니다. 다리 위에 잠시 멈춰 서서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고즈넉한 풍경을 먼저 담아봅니다. 본격적인 사찰 나들이 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에 더할 나위 없는 순간입니다.ㅎ



일승교를 건너면 '영축산통도사(鷲山通度寺)'라는 웅장한 현판을 품은 일주문이 반겨줍니다. 사찰의 첫 대문인 이곳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문을 지나는 순간만큼은 세속의 모든 번뇌를 내려놓고, 진리를 향해 한마음으로 정진하라는 울림을 전해줍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나타납니다. 사찰 중심부로 들어서기 위한 필수 관문입니다. 천왕문 근처에 매화꽃이 제법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고풍스러운 사찰과 어우러진 모습을 잠시 담아 봅니다.ㅎ



천왕문을 지나면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極樂寶殿)'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켜켜이 쌓인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외관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전각 주변을 천천히 거닐며, 특유의 경건하고도 편안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껴봅니다.


극락보전 맞은편, 2층 규모의 범종루(梵鍾樓)가 자리합니다. 종과 북, 목어, 운판이 함께 있는 이곳은 사찰의 하루를 여닫는 소리의 중심입니다. 숲과 계곡을 타고 번지는 은은한 종소리를 상상하며 걷다 보니, 마음속 번뇌도 함께 씻겨 내려가는 듯합니다.ㅎ


극락보전 건너편에는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약사전(藥師殿)'이 자리합니다. 전각 앞에서 간절히 절을 올리는 한 어르신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 깊은 정성이 닿아 부디 오래도록 무병장수하시기를 저도 곁에서 마음 다해 빌어봅니다


발길을 옮겨 마주한 곳은 영산전(靈山殿)입니다. 석가모니께서 영산회상에서 설법하던 장면을 재현한 공간입니다. 이곳의 백미는 단연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장엄하게 그려낸 '팔상도(八相圖)'입니다. 아쉽게도 내부는 촬영 금지입니다. 벽화의 정교함과 색채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니, 꼭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ㅎ


영산전 뒤편의 영각(影閣) 입니다.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추모의 공간입니다. 평소엔 엄숙한 이곳이 이맘때면 유독 북적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통도사의 봄을 가장 먼저 깨우는 홍매화, '자장매' 머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조금 늦게 찾은 탓에 자장매는 내년을 기약하며 작별을 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찰의 마지막 관문인 불이문(不二門)으로 향합니다. '불이(不二)'란 부처와 중생, 삶과 죽음이 결국 둘이 아닌 하나라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즉, 해탈로 향하는 최종 목적지인 셈입니다. 문 안에서 열정적으로 셔터를 누르는 다른 진사님의 모습을 담으며, '좋은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결국 하나(不二)겠구나' 하는 묘한 동질감을 느껴봅니다. ㅋ




용화전(龍華殿)에 발길이 닿았습니다. 석가모니 이후 56억 7천만 년 뒤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을 모신 전각입니다. 현재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미래의 희망을 약속하는 따스한 공간 앞에서, 한 어머님이 올리는 진지한 절의 무게가 참 인상적입니다. 그 간절한 마음이 꼭 희망으로 닿기를 곁에서 조용히 응원해 봅니다.


용화전 앞에는 지혜의 빛을 상징하는 '황화각(黃華閣)'이 서 있습니다. 예전엔 스님들이 모여 경전을 공부하고 법문을 듣던 치열한 구도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전시나 행사를 위한 문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내부에 발을 들일 순 없었지만, 지혜의 향기가 밴 듯한 건물 외관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ㅎ


발길은 자연스레 관음전(觀音殿)으로 이어집니다. 세상의 모든 낮은 소리에 귀 기울이며 중생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입니다. 대웅전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많은 불자들이 기도를 올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의 낮은 읊조림 속에 저도 마음 한 조각을 보태봅니다.


드디어 통도사의 중심 건물 대웅전(大雄殿) 입니다. 이 곳에는 불단 위에 불상이 없습니다. 바로 뒤편 '금강계단'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부처님이 실재하시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보는 방향에 따라 지붕 모양과 현판 이름(대웅전, 대방광전, 금강계단, 적멸보궁)이 각기 다른 점은 통도사 건축 미학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대웅전의 위엄 아래 간절히 참배하는 수많은 신도의 모습과 함께 그 장엄한 기운을 담아봅니다




다음은 삼성각(三聖閣)입니다. 산 산신(산의 신), 칠성(북두칠성), 독성(나반존자) 세 분을 한곳에 모신 이곳은 불교가 우리 민족의 고유 신앙을 따뜻하게 품어 안은 포용의 공간이라 하겠습니다.


대웅전 맞은 편에 설법전(說法殿)이 있습니다. 통도사의 전각들 중 규모가 매우 큰 편에 속하는 현대식 건물입니다. 많은 신도가 한데 모여 큰스님의 법문을 경청하는 배움의 장입니다.

발길은 사후 세계의 주존인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冥府殿)에 머뭅니다. 떠난 이들의 넋을 기리고 극락왕생을 간절히 빌어주는 곳입니다. 엄숙한 공기 속에 잠시 머물다 보니, 지금 내가 누리는 '삶'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다시금 되새겨보게 됩니다.

이 외에도 통도사에는 많은 전각들이 자리합니다. 하지만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 많아 조심스레 발길을 돌려야 하는 곳도 많습니다. 천천히 경내를 거닐며 고즈넉한 사찰의 아침 공기를 만끽해 봅니다. 마음까지 맑아지는 참 평온한 시간입니다. ㅎ






통도사를 둘러본 후 봐두었던 매화 포인트로 향했습니다. 홍매화는 지고 있지만, 고결한 자태의 청매화는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사찰의 정취와 어우러진 꽃송이들의 아름다움은 여접합니다. 늦게나마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통도사의 봄은또 다른 빛깔로 위로해 줍니다.







사찰 한편에는 산수유도 수줍게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아직 만개한 상태는 아니지만, 강렬한 노란 빛은 통도사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존재감을 한껏 뽐냅니다. 봄의 전령사가 속삭이는 듯한 그 화사한 색감을 기분 좋게 담아봅니다.


뜻밖의 아름다움과 마주했습니다. 공양간 옆, 장독대 사이로 진달래가 수줍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정성스레 가꾼 분재 나무와 어우러진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자장매를 놓친 진분홍의 아쉬움을, 이곳의 진분홍 진달래가 오롯이 달래주는 듯합니다. ㅎ




통도사 경내 남쪽, 작은 언덕인 '사자목'으로 향합니다. 작은 돌다리를 건너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면 통도사의 전경을 조망할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양식을 간직한 오층석탑이 서 있습니다. 1991년에 복원된 탑이지만, 그 단단한 기품은 여전합니다. 석탑을 천천히 음미한 뒤, 발아래로 펼쳐진 통도사의 고즈넉한 전경을 카메라와 눈에 가득 담아봅니다.







오층석탑을 끝으로 주차장으로 향하던 길입니다. 천왕문을 빠져나오는 순간, 아름다운 공작새 한 마리와 마주쳤습니다! 사찰에서 만난 공작이라니!! 처음 보는 광경에 가방에 넣었던 카메라를 급히 다시 꺼냈습니다. 화려한 꼬리를 활짝 펼쳐주길 내심 기대하며 숨을 죽이고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도도한 뒷모습만 남긴 채 다음을 기약하게 하네요.ㅎ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명 사찰이지만, 통도사의 봄은 결코 화려하게 뽐내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엔 오래도록 머무는 은은한 향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홍매화가 지고 매화가 피어나는 그 짧은 틈의 시간이, 통도사를 가장 통도사다운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어 있음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곳, 그게 바로 통도사의 진짜 매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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