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매년 이맘때면 많이 생각나는 가곡 '동무생각'의 한 구절입니다. 노랫말 속 배경이 된 청라언덕은 대구시 중구에 위치합니다. 요즘 개인적인 일정으로 대구를 자주 들르곤 하는데, 잠시 허락된 한가한 틈을 타 청라언덕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청라언덕 주변의 주차 여건은 녹록지 않습니다. 저는 언덕과 바로 맞닿아 있는 대구동산병원 남문의 유료 주차장을 이용했습니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내부에 자리하고 있어 처음 방문하는 분들은 조금 낯설고 찾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ㅠㅠ

무사히 주차를 하고 나면, 곧장 청라언덕으로 이어집니다. 주차장 앞에 마주한 푸른 담쟁이 넝쿨 벽은 마치 이곳의 이름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청라(靑蘿)’는 이름 그대로 ‘푸른 담쟁이덩굴’을 뜻합니다. 100여 년 전, 이 언덕을 무성하게 뒤덮고 있던 덩굴은 지금의 ‘청라언덕’이라는 이름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주차장을 나서면 '근대문화골목' 이 시작됩니다. 선교사 주택 → 3·1 만세운동길 → 계산성당 → 이상화·서상돈 고택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도심 한복판에서 개화기 근대의 발자취를 오롯이 품고 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선교사 주택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뜻밖의 지점을 발견했습니다. 옛부터 사과로 이름난 대구의 명성을 증명하듯, 대구 사과가 처음 뿌리 내린 시배지가 바로 청라언덕이었습니다. ㅎ




사과나무 시배지 곁으로 오래된 종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동산의료원 개원 100주년을 기리며 세워진 이 종탑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전국적인 '담장 허물기' 운동의 첫 시작을 기념하며, 당시 철거된 담장의 벽돌들을 옮겨와 쌓아 올린 것입니다. 경계를 허물고 소통을 택했던 그날의 온기가 종탑의 붉은 벽돌 사이사이에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합니다.


청라언덕에는 3채의 선교사 주택이 남아 있습니다. 그 곳에 머물렀던 선교사들의 이름을 따서 스윗즈 주택,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으로 부릅니다. 이제는 각각 선교와 의료, 교육의 역사를 전하는 박물관으로 운영중입니다. 그중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1910년경 지어진 스윗즈 주택입니다. 1907년 대구읍성이 헐릴 때 가져온 안산암 성돌로 기초를 만들었다니, 건물의 기초 하나에도 대구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깃들어 있는 듯합니다.



이어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의료박물관으로 운영 중인 챔니스 주택입니다. 이 건물 역시 1907년 대구읍성이 헐릴 때 나온 안산암 성돌을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붉은 벽돌을 미국식으로 쌓은 건물입니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유행하던 방갈로풍 양식으로 지었는데, 100여 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그 시절의 이국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주한 곳은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블레어 주택입니다. 1910년에 지은 이 집은 콘크리트로 다진 기초와 지하실 위에 붉은 벽돌을 미국식으로 쌓아 올렸습니다. 당시 미국 주택의 전형적인 형태를 엿볼 수 있는 건물로서, 붉은 벽돌 사이로 흐른 백 년의 시간이 건물의 결마다 깊게 새겨져 있는 듯 합니다.



이어서 '청라언덕' 표지판이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그 주변에는 1899년 제중원을 전신으로 삼은 동산병원의 옛 흔적, '구관 현관'이 자리합니다. 1931년 지어진 건물이 지하철 공사로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그 가치를 잊지 않기 위해 현관만 옮겨온 것입니다. 그 옆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인 '동무생각' 노래비가 있습니다. 비석 앞에서 가사를 읊조리다 보면, 청라언덕이 품은 백 년의 시간과 누군가의 애틋한 그리움이 봄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듯합니다.




청라언덕에는 대구. 경북 지역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대구제일교회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1893년 4월의 첫 문을 연 이곳은 130년여 깊은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지금 마주하는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건물은 1989년에 착공하여 1994년에 완공된 것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첨탑과 장엄한 외관이 시선을 압도합니다. 청라언덕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이국적인 무게감을 더해주는, 대구 근대 골목의 든든한 이정표 같은 곳입니다.




제일교회 옆으로 '3·1 만세운동길'이 이어집니다. 일명 '90계단' 길이라고도 합니다. 1919년 3월 8일! 당시 대구 3.1운동에 참여하려는 계성, 신명, 대구고보의 학생들이 일본 순사의 감시를 피해 서문시장 큰 장터로 달려갔던 긴박한 통로였습니다. 계단 한쪽에 펄럭이는 태극기와 벽면을 채운 낡은 사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 날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3.1만세운동길의 90계단을 내려오면 길 건너편으로 웅장한 성당이 보입니다.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세워진 고익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계산동성당 입니다. 1918년 완공된 계산동성당은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ㄴ라면 대구 근대사의 중심을 묵묵히 지켜온 숭고한 세월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ㅎ



계산성당은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속았수다' 촬영지였습니다. 극 중 양금명(아이유)의 결혼식 장면을 여기서 촬영했습니다. 성당 고즈넉한 외관과 입구는 칠곡 가실성당에서, 성당 내부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예식 장면은 계산성당에서 나누어 촬영한 것입니다. 드라마의 뭉클했던 여운을 품에 안고 성당 구석구석을 천천히 거닐며 마음의 평온을 되찾아 봅니다





계산성당을 뒤로하고 '계산예가'를 찾았습니다. 민족저항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의 거장 서상돈 고택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구 계산동 일대는 근대문화예술이 가장 먼저 뿌리 내린 지역입니다. 계산예가는 당대의 지역 예술가들을 소개하며 그 시대로 안내합니다. 입구에서부터 이 좁은 골목을 오가며 시를 쓰고 독립을 꿈꿨던 예술인들의 짙은 정취를 오롯이 느껴봅니다.






이어서 계산예가 바로 옆에 위치한 민족저항 시인 이상화고택을 찾았습니다. 이상화 시인은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시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민족시를 발표하여 민족정신을 드높였던 분입니다. 현재의 고택은 이상화 시인은 말년(1939~1943)을 보낸 곳입니다. 고택을 둘러 보면서 한국 현대시의 이정표를 세운 민족시인 이상화의 숨결을 느껴 봅니다.





다음은 계산예가 맞은편, 서상돈 선생의 고택을 찾았습니다. 일제로부터 국권을 되찾기 위해 "나랏빚을 우리 손으로 갚자"며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에 선 서상돈 선생의 숨결이 머무는 곳입니다. 특히 당시의 국채보상운동 기록물들이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럽게 다가옵니다. 고택을 둘러보면서 서상돈 선생의 뜻과 스스로 일어섰던 조상들의 의지를 되새겨 봅니다.






서상돈 고택을 끝으로 근대문화골목 투어를 마무리합니다. 가곡 '동무생각'은 '백합 필적에'를 노래했지만, 저는 '목련 필적에'를 읊조려 봅니다. 청라언덕에는 아름드리 목련 나무가 많습니다. 하얀 목련이 붉은 벽돌 주택과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유럽의 오래된 마을같은 이국적인 정취를 선물합니다.이제 곧 목련 꽃이 피어납니다. 어쩌면 하얀 목련이 환하게 피어나는 바로 지금이 청라언덕의 '봄의 교향악'이 가장 찬란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아닐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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