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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진짜 이야기'가 있는 곳! 조선 최초의 계획군사도시 통영 삼도수군통제영과 국보 세병관( 동피랑 / 서피랑 /통영중앙시장 /강구안 문화마당 )

by 이청득심 2026. 3. 24.

    푸른 바다의 도시 ‘통영’의 지명 유래를 아시나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후, 이 지역에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설치했습니다. '통제영'을 줄여 부르던 것이 현재의 지명 '통영(統營)'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통영(統營)'이란 도시 이름이 비롯된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을 찾았습니다. 

     통영 중앙시장 근처, 번잡한 구도심의 활기 속에 통제영이 자리합니다. 유료주차장인 '세병관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니, 벽면의 문구 하나가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조선 최초의 계획군사도시,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그 강렬한 한 문장이 이곳에 깃든 역사의 무게를 실감 나게 합니다.

   주차장을 나서니 정돈된 모습의 통제영 광장이 반겨줍니다. 예전엔 민가들이 모여있던 곳을 정비하여 역사의 쉼터로 조성했습니다. 광장 한켠에서 발길을 멈추게 한 건 1906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통영 문화동 벅수'입니다. 국내 돌장승 중 유일한 채색 장승으로, 마을의 액운과 전염병을 막아주던 비보 장승입니다. 제주에 '돌하르방'이 있다면, 통영에는  '벅수'가 있는 셈입니다.ㅎ 

   광장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통제영의 입구에 닿습니다. 성인 기준 3,0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나면, 조선 수군의 본영으로 들어가는 시간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입구에 서면 위용있는 자태로 가로막는 '망일루(望日樓)'가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삼도수군통제영은 4개 영역으로 나뉩니다. 중심인 세병관, 오른편의 내아(관사), 입구 왼편의 우후군(중영), 그리고 세병관 왼편에 자리한 12공방입니다. 먼저 중앙 세병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통제영의 외삼문인 '망일루(望日樓)'를 지나야합니다. 1611년 , 제10대 우치적 통제사가 처음 세웠던 이 누각은 소실되었다가 2000년에 중건된 것입니다. 

  망일루를 지나 통제영으로 들어 섭니다. 왼쪽으로는 통영성을 수호하던  ‘산성청(山城廳)’ , 오른쪽에는 군무를 살피던 '좌청(左廳)'과 왜군의 항복을 받던 '수항루(受降樓)'가 반겨줍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절제된 건축물 사이를 거닐며, 삼도수군을 호령하던 통제영의 묵직한 위엄을 느껴 봅니다,

▼  통영성을 지키는 산성중군등이 근무했던 ‘산성청’

▼ 군관과 사병이 대기했던 ‘좌청’

▼  모의 왜병으로부터 항복받는 행사를 거행했던 수항루(受降樓) 

   이제 계단을 따라 통제영의 중심, 세병관(洗兵館)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곳에 닿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과문(止戈門)'을 지나야 합니다. '창을 거둔다'는 뜻의 지과(止戈)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의 '병기를 씻는다'는 세병(洗兵)의 의미와 참 많이 닮아있는듯 합니다. 

    드디어 삼도수군통제영의 심장, 국보 제305호 세병관(洗兵館)을 마주합니다. 1605년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세운 것입니다. 압도적인 크기의 현판은 제137대 서유대 통제사가 쓴 글씨입니다. '만하세병(挽河洗兵)', 즉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시구에서 따온 그 이름이 가슴을 울립니다. 평화의 염원이 담긴  '세병(洗兵)' 의 의미를 되새기며, 고요하고 웅장한 세병관의 전경을 눈에 담아봅니다.

   정면 9칸, 측면 5칸인 세병관의 압도적인 규모는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조선 시대 단일 건물 중 최대급의 바닥 면적을 자랑합니다. 신발을 벗고 광활한 대청마루에 올라서면, 사방이 막힘없이 탁 트인 거대한 공간에 압도당합니다. 나무의 질감을 느끼며 실내를 천천히 거닐다 보니, 이 너른 마루에서 삼도수군을 호령하던 통제사의 위엄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넓은 대청마루 중앙에는 주변보다 한 단 높게 솟은 특별한 좌대가 있습니다. 유독 이곳의 단청은 더 화려합니다. 이곳은 원래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셔두고, 궁궐을 향해 예를 올리던 자리입니다. 그 신성함 때문인지 지금도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어, 멀리서나마 그 경건한 분위기를 마음으로 느껴봅니다. ㅎ

   세병관을 나와 닿은 곳은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세운 백화당(白和堂)입니다. 먼 길을 달려온 중국 사신이나 귀한 손님들을 맞이하던 통제사의 접견실 입니다. '백화(白和)'라는 이름처럼 만물이 화합하는 평온함이 감도는 공간입니다.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던 조선 선비의 기품과 여유가 느껴져, 잠시 마루 끝에 앉아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듭니다

   백화당 서쪽으로는 조선의 섬세한 손길이 모여 있는 12공방이 펼쳐집니다. 군수품부터 왕실에 올리는 진상품, 중국 사신의 헌상품까지 만들어내던 대규모 생산 단지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국가 최고의 기술력이 집약된 첨단산업단지인 셈입니다. 공방 곳곳을 거닐며 인상적이었던 총방과 입자방, 패부방, 화원방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 망건등을 만드는 총방(騘房)과 삿갓등을 만드는 입자방(笠子房)

나전제품을 만들던 패부방(貝付房)

각종 지도 및 군사적 목적의 의장용 장식화를 그렸던 화원방(畫員房)

  12공방 역역을 둘러본 후 내아군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통제사가 업무를 보는 영역으로, 세병관의 동쪽에 위치합니다.   내아군 내에는 운주당과 경무당등이 있는데, 관리의 식구들이 살림하는 내아가 함께 있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다만  경무당과 내아는 수리 중이라 관람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중간에 역대 통제사들의 공덕을 모아 둔 ‘통제사비군’을 지나야 하는데, 그 비문을 살펴보는 것도 나름 재밌습니다. 

▼통제사비군

  12공방을 뒤로하고 세병관 동쪽, 통제사가 집무를 보던 내아군 영역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목에는 역대 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통제사비군’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요. 비문을 살펴보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내아군 안에는 집무 공간인 운주당 경무당, 그리고  관리의 식구들이 거처하던 내아가 있습니다. 경무당과 내아는 현재 수리 중이라 관람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 내아군 대문

  내아군 영역에 들어서면 통제사의 집무실인 운주당(運籌堂)이 그 위용을 드러냅니다. 제21대 이완 통제사 시절, 경무당과 함께 창건된 이곳은 삼도수군의 전략과 행정이 치열하게 논의되던 장소입니다. '운주'라는 이름처럼 승리를 위한 계책을 세우며, 이곳에서 바다의 안녕을 고민했을 통제사의 뒷모습을 잠시 상상해 봅니다.

   통제영 입구 왼쪽에는 통제사의 참모장 격인 '우후'가 머물며 업무를 보던 우후군(중영) 영역이 있습니다. 본영과 달리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편안하게 들러볼 수 있습니다. 통제영의 직할대 역할을 수행하던 곳답게 중영청결승당, 손님을 맞이하던 응수헌까지 배치되어 있습니다.

우후가 생활하던  결승당(決勝堂)

 ▼ 중영안에 있었던 영빈관 응수헌(應酬軒)

  우후군 영역의 중심인 중영청은 통제사의 참모장인 우후가 머물던 군영으로, '우후영'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한때 근대기 시절에는 통영세무서가 있었던 곳입니다. 잃어버린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2011년 중건되었습니다. 현대적 건물이 물러나고 다시 세워진 중영청을 보고 있노라니, 통영의 역사가 제 자리를 찾은 듯해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집니다.

 ▼ 중영 외삼문인 삼도대중군위문(三道大中軍衛門)

   많은 분들이 이곳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직접 세운 곳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장군의 통제영은 한산도에 있었고, 지금의 통제영은 임진왜란 이후 제6대 통제사가 터를 잡은 곳입니다.1895년 폐영될 때까지 290여 년간 조선 바다를 지휘했던 조선 수군의 총 본부였습니다. 통영을 여행할 때 많은 사람들이 케이블카나 미륵산, 동피랑 벽화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통영의 진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꼭 한 번 통제영과 세병관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바다의 도시 통영은 풍경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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