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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라면

징비록을 집필한 유서깊은 곳! 안동 옥연정사! (안동여행/부용대명소)

by 이청득심 2020. 9. 11.

     개인적으로 안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서애 류성룡을 꼽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의병장 곽재우와 함께 임진왜란을 극복한 3대 영웅으로 생각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

 

     그가 집필한 징비록은 임진왜란처럼 참혹했던 전쟁을 다시는 겪지 말자는 자기 반성의 성격을 지닌 책입니다.  ‘난중일기와 함께 그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책입니다.


  

    국보 제132호 지정될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닌  징비록을 집필했던 장소가 부용대 아래에 있는 옥연정사입니다.  부용대 방문을 계획할 때 부터 가보고 싶었습니다. 

 

   옥연정사는 부용대 주차장에서 강변 쪽으로 5분여 정도 걸어 들어가면 있습니다.  부용대 아래 강가에 위치하고 있죠.  대문 옆에 있는 장작 더미가 인상적입니다.^^

 

▼ 옥연정사 입구 모습!



      옥연정사로 들어가기 전에 입구 왼쪽에는 안내판 두개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습니다.  옥연정사와 징비록에 대한 의미를 기록한 안내판 입니다.  찬찬히 그 내용을 읽어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ㅎ


▼ 옥연정사와 징비록 안내판!!

▼ 징비록 안내문

▼ 옥연정사 안내문


   대문채를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안채인 완심재(玩心齋)가 나타납니다.  주로 주인이 거처하는 공간입니다.  안채를 지나면 예사롭지 않은 큰 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 완심재의 모습

▼ 예사롭지 않은 고목이 반겨줍니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에 이끌려 고목앞으로 가 봤습니다.  2005년 보호수로 지정된  대략 465년의 수령을 가진 소나무 입니다. 확실히 기품이 달라보일만 합니다...ㅎㅎ


▼ 보호수 지정 안내석

▼ 465년 된 소나무의 자태!!


      보호수 맞은 편에 건물이 별당채입니다.  '친구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을 지닌 원락재((遠樂齋) 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류성룡 선생이 이곳에서 많은 벗들을 만나셨겠죠? ㅎㅎ


      그런데 원락재 앞에 있는 의자 2개가 눈길을 끕니다.  조선시대 당시, 나이 많은 신하에게 임금이 지팡이[杖]와 의자[궤]등을 내리는 풍습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류성룡 선생을 공경하며 임금이 내린 의자가 아니였을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ㅎㅎ


▼ 원락재의 모습

▼ 원락재 현판!!

▼ 원락재 앞의 놓여진 의자!!


    원락재를 지나면 사랑채이자 서당채인 세심재(洗心齋)가 위치합니다.  옥연서당(玉淵書堂)이란 현판이 붙어 있어 서당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서당채를 천천히 둘러봤습니다. 서당채와 보호수가 어우러진 모습은 정말 운치 있습니다...ㅎ


▲세심재의 모습


▲ 옥연서당 현판

▲ 서당채와 보호수!


    사랑채에서 밖을 보니 작은 문이 하나 있습니다.  궁금해서 따라 나가봤더니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옛날에는 하회마을에서 나룻배를 타고 오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지만 얼마전까지도 나룻배를 실제로 운영했습니다.  또한 섭다리가 있었는데, 큰 폭우에 휩슬려 내려가고 없어 졌습니다. 


▼ 강변으로 내려가는 문!

▼ 간죽문(看竹門의 모습!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이 낙향하여 거처하던 가옥입니다.  배를 타고 오지 않으면 접근할 수 없는 절벽 끝에 집을 지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대가족 살림과 사당이 있는 종택(宗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입니다.  임진왜란을 어렵게 치룬 선생의 삶과 모습이 녹아 있는 곳이라 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징비록'을 집필하던 선생의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만의 학문과 만남의 독립 공간이라 하겠습니다. 부용대에 가시면 '징비록'를 집필한 유서깊은 옥연정사를 꼭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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