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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보는 SNS

"창원시 페북지기 하면서 젊어졌어요"

by 이청득심 2014. 8. 18.

"창원시 페북지기 하면서 젊어졌어요"

[지역, 지역 언론인]시 공식페이지 운영했던 임성운 씨

권범철 기자 2014년 08월 07일 목요일

아쉬운 화모닝!!

… …

쇠가 아무리 강해도 나무자루가 없으면 힘을 쓰지 못하듯

아무리 재능과 재물이 많은 사람이라도

누군가 자루가 되어주지 않으면

진정 아름다운 제대로의 빛을 내지 못하는데요.

오늘도 우리는 누구의 자루가 되는 하루였으면 좋겠네요!

홧팅! 아자아자!

ps)오늘 아침인사를 끝으로 저는 물러가고 새로운 페북지기가 오신답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페북지기와 함께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즐거운 곳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변함없는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그 동안 창원시 공식페이지(창원광장)를 사랑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7월 29일 임성운 씨의 마지막 인사글 일부


       ▲ 임성운 씨./권범철 기자


  2011년부터 최근까지 창원시청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한 임성운(46) 씨는 전산직 공무원이었다.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담당이 필요했던 창원시는 단지 전산직 공무원이란 이유만으로 그를 공보실로 보냈다. 그는 SNS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없었다. 심지어 '페이스북'을 '페이스샵'으로 말하고 다녔던 사람이 그였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인사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8월 6일 현재 창원시청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 수는 2만 3570명이다.


  지난 7월 29일 '아쉬운 화모닝!'으로 시작한 마지막 글을 남기고 그는 내서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마지막 인사에 대한 '좋아요'는 70회가 넘었고, 2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댓글엔 그를 떠나보내는 서운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내서도서관에서 임 씨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지금도 화장실 명언을 유심히 보고 다니죠. 습관처럼 페이스북에 올릴 만한 글을 찾고 있죠"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표정엔 여유가 있었고 눈은 깊어졌지만 옅은 허무가 배어 있었다. 


  "서운하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으니 제 자식과 같죠. 눈만 뜨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열고 잠자리에서도 봤죠. 하루 종일 일한 것이죠. 그래서 더 애틋하죠. 떠나면서 후임자에게도 제가 하던 글과 비슷한 문장을 유지해 줄 것을 당부했죠. 간섭이 아니라, SNS도 대화하는 것과 비슷해서 갑자기 문장이 바뀌면 사람들이 떠나 버려요. 낯설어서."


-처음 SNS업무를 시작할 때 이야기를 좀 해 주시죠.

  "아침에 뭘 올릴까 고민하다가 일종의 교통방송 역할을 했죠. 늘 오전 7시 45분까지 출근해서 시내 곳곳의 교통상황을 중계했습니다. 시민들이 좋아했는데, 그것도 매일 하니 지루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인사를 하기 시작했죠. '아자아자!'라든가 '월모닝!' 같은 저 나름대로 인사말도 그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반응이 더 좋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얻어 좋은 글들을 찾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론 화장실엘 가도 그런 글귀들만 보고 다니고, 어딜 가더라도 그런 것들을 찾아 읽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공무원으로는 생소한 일일 수 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월모닝'이라고 인사를 하니, 어떤 분들은 관공서에서 그런 단어를 써도 되느냐며 질책하시더군요. 그래서 한동안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왜 안 하냐면서 서운해 하시는 분들이 늘더군요. 그래서 아주 나쁜 것이 아니라면 친숙하고 자유롭게 해보자고 맘먹었습니다. 그 뒤론 '으랏차차'라든가 '아자아자' 같은 단어들을 아침인사에 사용했죠. 야구장 입지 관련 내용을 올렸을 때도 항의가 많았습니다. 험한 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답변을 했죠. 민감한 문제라 할지라도 일단 성실하게 답하는 것이 공무원의 자세라고 봅니다." 


-3년간 SNS 업무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2011년 2월 14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눈이 10cm 이상 와 비상이 걸렸죠. 새벽에 시청엘 갔는데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알렸죠. 다음 날도 구제역 비상근무라 밤샘근무를 해야 해서 재해 소식을 꾸준히 올렸죠. 다음날 과장님이 내려오시더니 잘했다고 칭찬을 하시더라고요. 폭설 대책과 관련해 시장님께 야단 들으러 올라갔는데 마침 제 활동을 칭찬한 기사가 <경남도민일보>에 난 덕에 질책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후로 태풍 같은 것이 오면 밤샘은 기본으로 할 수밖에 없었죠. 하하!" 


-SNS를 더 잘 운영하기 위한 기술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시민들과 공감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공감을 위해선 '감동'을 줘야 합니다. 올해 조회수 100만 건이 넘어가는 것이 6건인데 대부분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단체에서 어디에 많은 기부를 했다, 이런 건 되도록 올리지 않습니다. 쌀 몇 포의 기부라 할지라도 정성과 감동이 있다면 그걸 올렸습니다. SNS에선 그런 콘텐츠가 통합니다. 그리고 발이 부지런해야 합니다. 흔히 앉아서 모니터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리면 그걸 그대로 전달할 것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찍어서 올린다든가 주위의 시원한 장소를 찾아가 직접 소개를 한다든가 하면 반응부터가 다릅니다.

또한 자치단체가 다루기에 민감한 소재라고 하더라도 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일단은 시민들의 충격을 위로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운영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매뉴얼 수준은 아니지만 SNS 업무를 하면서 느꼈던 것을 개인 블로그에 정리해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스스로 변화한 점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무엇보다 집사람과 좋아졌습니다. 이 일을 하기 전엔 나는 그냥 나이 든 공무원 아저씨였죠.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것도 집사람이 결정하면 마지못해 운전만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SNS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맛집 등을 가족과 다니기 시작했죠. 처음엔 '당신이 설마'라던 집사람도 점점 만족하게 되더니 이젠 내 선택을 기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발표수업엘 갔는데 아빠 직업을 소개하면서 'SNS로 사건·사고를 매일 알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더군요. 그 전엔 매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아빠였는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젊어졌습니다. 그게 아주 좋습니다."


  전산직 공무원에서 SNS 공보담당을 거쳐 도서관으로 온 그는 새 일에 대한 기대에 차 있었다. "편하고 즐거운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설렙니다."  자리만 옮겼을 뿐 그는 언제나 같은 일을 해 온 건지도 모르겠다. '소통'과 '공감'이라는 공직자의 본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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